제목 20250223_무등일보_[아침시평] '양림동의 시간'
작성일자 2025-04-19
[아침시평] '양림동의 시간'
라도삼(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문화정책)


문화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 질문을 받으면 난 '시간'으로 산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을 축적해야 지역은 문화적 경관을 갖게 되고, 그 경관으로 문화성을 인정받으며 여러 사람이 찾는 지역으로 발전하게 된다. 서울의 북촌이나 전주 한옥마을 등이 그렇다. 오늘날에는 이런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뿐 아니라 근현대의 역사를 축적한 마을, 산업적인 경관을 가진 지역도 주목받는다. 서울의 얼마 안 되는 준공업 지역인 문래동이나 성수동은 지금 서울 최고의 예술과 문화 활동이 펼쳐지는 지역이다.

양림동도 마찬가지다. 1904년 미국 선교사였던 배유지(Euzene Bell)와 오엔(Clement C. Owen)이 자리를 잡으며 형성된 양림동은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 제중원 등이 설립되고, 광주의 의료와 교육을 발전시킨 우일선 선교사, 이장우 가옥, 최승효 가옥 등이 어우러지며 근대적인 역사문화공간이 되었다. 여기에 김현승, 미술가 이강하, 음악인 정추, 작곡가 정율성 등 여러 예술가가 흔적을 남겼고, 여러 다양한 예술가가 활동하며 다양한 예술을 체험하는 공간이 되었다. 지금도 양림동은 한희원 미술관, 이강하 미술관, 양림미술관 등 여러 예술시설이 자리 잡으며 멋진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이 양림동에 시간의 의미를 발견하고 새로운 시간을 부여하고자 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2011년 '굿모닝 양림'으로 시작한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프로젝트는 2016년 복합문화축제인 '1930 양림쌀롱'으로 발전했고, 2020년 '마을이 미술관이다'라는 컨셉 하에 개최된 양림골목비엔날레는 2024년 광주비엔날레에 초청되며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다. 작은 선교사 마을에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예술마을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 결과 최근에는 지역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끌어 올리면 역설적으로 양림의 시간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지난해 북촌 한옥마을을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해 과도한 관광객을 규제하기 시작한 종로구처럼,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은 지역 정체성을 흔들고 지역주민을 해체할 수 있다. 실제 세계 주요 도시는 관광객 유치을 위해 노력했던 2000년대와 달리 적정한 관광객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24년 4월 25일부터 7월 14일까지 29일간 당일치기 여행객에서 5유로의 입장료를 부과한 베니스나 같은 해 하룻밤 숙박비용을 12.5% 인상한 암스테르담, 1인당 2유로에서 4유로로 관광세를 올린 리스본 등이 그 예이다. 그만큼 각 도시는 지나친 관광객으로 인한 지역의 변화를 막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실 문화정책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시간 관리다. 지역을 어느 정도 정체(停滯)시켜 정체(正體)를 갖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며, 이 정체(正體)로 인해 지역이 정체(停滯)되지 않고 발전되도록 하는 것이 주요 전략이다. 그렇기에 예술을 통한 지역 활성화나 경관을 통한 관광객 유치 더불어 적정 수의 관광객 관리가 일어나는 것이다.

지난해 광주비엔날레 기간 양림동을 찾은 나는 양림의 시간을 보였다. 아직 근대적 자산과 경관으로 단단한 마을로 이루어진 양림은 여러 예술가의 활동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었다. 지역을 찾는 방문객은 아직 양림의 시간을 위협하지 않았고, 적정한 속도에서 양림의 시간을 지키고자 한 사람들의 노력 또한 돋보였다.

그러나 한편에서 양림의 시간을 빠르게 하고자 하는 욕망 또한 보였다. 곳곳에 들어서기 시작한 카페와 레스토랑 등은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 들어서고 있었고, 지역을 활성화해 장소 판촉의 효과를 높이고자 하는 행정의 욕망 또한 뚜렷해 보았다. 여기에 무심한 듯 방문객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 또한 이 시간이 어떻게든 변하길 바라는 것 같았다. 양림의 시간은 이 욕망에 있으리라.

주목할 것은 이 시간이 영원히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 정점에 서 그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그 시간을 늦추고 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행정의 기술이다. 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에 따라 양림의 시간은 바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양림의 시간이 오지 않길 바란다. 행정과 지역민, 기획자가 뭉쳐 양림의 시간이 지속되고 이어지길, 소중한 양림을 본 사람으로서 바래본다.




/ 라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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