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종료] 2025년 소장작품 <'이강하'의 아! 광주>



2025년 광주광역시 남구 이강하미술관 소장작품 전시


'이강하'의 아! 광주




2025.01.21.(화) - 04.30.(수) (* 월 휴관, 설 연휴(01.27.-30.) 휴관)






■ 전 시 명 : 2025년 이강하미술관 소장작품 전시 <'이강하'의 아! 광주>

■ 전시기간 : 2025.01.21.(화) - 04.30.(수) (*월 휴관, 설 연휴(01.27-30. 휴관)

■ 전시장소 : 광주광역시 남구 이강하미술관

■ 전시해설 : 일 1회 도슨트 운영 ㅣ네이버 및 유선전화 사전 예약

■ 문   의 : 062.674.8515 (*단체관람 예약 / 문의)

■ 기 획 글



<아! 광주> 우리는 광주를 ‘자유’라 부른다.

 

“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강연문 중에서

 

2018년부터 광주광역시 남구 이강하미술관은 故 이강하 작가의 삶과 예술작품을 시대의 주제와 흐름에 맞추어 소장작품 전시로 기획하여 재조명하고 있다. 이번 <아! 광주>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2025년 첫 번째 전시회로 생전 이강하 작가의 시선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광주’ 이야기와 ‘무등산’ 연작으로 구성하였다.

 

작가는 평생 한국미술의 정체성과 작업 탐구에 관심을 두고 있었고,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시대에 맞서는 시민군 활동 이후, 지명수배자가 된 상태에서 전국으로 은둔생활을 했었다. 그의 삶에서 가장 불운하고 불온했던 시기, 마주했던 광주와 무등산의 자연풍경과 한국전통 단청무늬, 남도 오방색은 그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함과 동시에 자유와 평화를 상상하여 또 다른 세계로 연결하는 새로운 비단길이자 사상적 통로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 한국미술의 정체성 확보와 자생력 탐구를 통해서 전통적 민족정서와 가치, 한국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근본을 찾고자 하는 집중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제작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렇게 탄생한 회화 방식은 유교적 정서와 예술적 사고에서 출발되어 오랜 시간 캔버스 위에 수행하듯이 그려나가 얻어낸 작가만의 설득력과 집념의 독자적인 결과물이 되었다.

 

사회와 시대가 어지럽고 혼탁할수록 좋은 예술가와 예술 작업들이 탄생된다고 이론가들은 이야기한다. 예술가들은 현실에서 찾을 수 없던 자유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탈출을 자신의 독자적인 작업을 통해 구원하고자 하였다.


미술관의 소장품 전시는 이강하미술관의 정체성을 수립함과 동시에 소장품의 관리・보존의 중요성 그리고 작고한 지역 작가 연구를 통해 ‘시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공감과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목적을 향해있다.







■ 작품소개




 

         

이강하 <비무장지대(DMZ)-염원> 2000









               

이강하 <아,1894년> 1994








         

이강하 <아! 광주> 1995







               

이강하 <5월> 1984





■ 평론글



2025 이강하미술관 소장품전 《아! 광주》 비평문

 

과거의 목소리를 불러오기: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

 

백기영(前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

 

“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



지난해 노벨상을 받은 작가 한강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있었던 강연에서 했던 이런 질문을 던졌다. 과연 현재와 과거는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산 자와 죽은 자는 무엇을 서로 도모할 수 있을까? 1980년 광주 5.18 당시 시민군이었고 ‘무등산 화가’로 알려진 이강하는 자신의 작가 노트에서 과거의 지나온 행적을 직시한다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정확한 지표를 설정할 수 있는 삶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게 있어서 과거는 한강의 질문처럼 현재를 도울 수 있는 정확한 지표임이 분명했다.

 

이강하미술관은 2025년 소장품전을 기획하면서 한강이 던졌던 질문을 바탕으로 이강하가 그린 광주항쟁 대표작<아! 광주>을 통해 과거의 목소리를 불러오기 위한 대화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 이강하의 작품은 한국 샤머니즘이 그러했듯,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며 ‘진홋굿’의 그것처럼 죽은 자의 한을 풀고 산 자를 위로한다. 이 전시에는 더불어 1980년부터 1995년 사이에 그려진 5월 광주에 관한 판화작품과 한국적 샤머니즘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고찰했던 2000년대 무등산 작품이 소개된다.

 

한강은 소설을 쓰는 동안 실제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낀 순간들이 있었다고 되뇐 바 있다. 한강이 집필을 위해 묘지에서 중얼거렸던 것처럼, 이강하는 살아가는 동안에 계속해서 되뇌었을 것이다. “우리는 먼저 간 이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 오늘 우리가 먼저 간 이들 처럼 양심의 소리를 듣고 앞서지 않는다면 그들을, 후대를 볼 면목이 없다.“


작가 이강하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그림으로 매개하는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아버지는 상여와 단청의 문양을 그려 생계를 유지하고 살았고 어린 이강하는 아버지의 그림이 죽은 자들을 영원으로 인도하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소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상여에서 보았던 선명한 색채들은 그의 작업에서 면면히 빛난다. 색들은 때로 비단처럼 펼쳐지고, 단청처럼 공간을 떠받들어 이승을 넘어 저승으로 가는 사람들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그 찬란한 오방색이 한국의 샤머니즘을 강렬하게 미학적으로 이끌어 온 것처럼, 이강하의 그림 속에서도 근원적 미학에 홀려 남도의 산하와 무등산 능선을 타고 넘는다.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은 청년 이강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놨다. 눈앞에서 공수 부대원에게 구타당하는 여학생을 목격하고 항쟁에 동참하게 되면서 그는 군부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고, 지명수배자로 2년여 간 전국의 사찰을 떠돌며 은둔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결국 구속되어 1년여 간 수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의 죄목은 소요, 특수강도, 포고령 위반, 총포 화약류 단속법 위반 등이었다. 이 아픈 상처는 작가 사후 15년 뒤인 2023년 12월 5일, 유가족의 숙원 끝에 광주고등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아 치유의 길을 열었다. 유죄 판결이 있고 무려 43년 만의 일이다.


이강하는 사후에야 비로소 죄에서 풀려날 수 있었지만, 살아있을 당시 남겨진 멍에는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었다. 수많은 시민의 죽음을 목도하고 살아남은 그의 삶은 진혼(鎭魂)을 숙명으로 삼은 무당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살아있음을 속죄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으며 그의 그림에는 더 이상 참혹한 아픔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염원이 가득했다. 그는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보았던 처참하고 지옥 같던 시간을 다시 그림으로 표현하며 떠 올릴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그의 그림은 그 시절 다른 민중미술 화가들의 작품에서 볼 수 없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죽은 자를 위로하는 상여에 그려진 꽃과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오방색 무늬의 꾸밈이 그것이다. 그는 또한 고향의 아름다운 산하를 그리거나 토속적인 소재나 샤머니즘적이고 전통적인 것들을 통한 은유적인 표현에 빠져들었다. 혹자는 이것을 ‘환상적 리얼리즘’(양초롱), ‘샤머니즘적 리얼리즘’(장석원)이라고 불렀다.

 

그는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민중미술 15년 전》에 1991년에 그린 <고향의 봄>을 출품한다. 남도의 마을풍경을 그린 이 작품은 당시 민중미술 경향의 작품과 많이 달랐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봄은 여전히 추운 겨울처럼 황량하고 삭막하기만 하다. 하늘을 향해 잔가지만 까칠하게 들어 올리고 서 있는 나무들의 풍경은 마치 생경한 꿈처럼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화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작은 노파의 그림자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이나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집어삼킨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은유와 상징의 언어는 말이라기보다는 고통에 가깝다. 이강하의 토속적인 풍경화에서 민중의 피부 속 깊숙이 숨겨진 한(恨)이 스며 나오고 세밀하게 그려진 남도의 산과 강에선 고통을 넘어서는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그렇게 그림으로 고통을 넘어서 갔다.


한강이 제주 4.3항쟁을 다룬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에서 주인공 경하가 친구 인선의 부탁을 받고 눈 내리는 밤 차가운 숲길을 헤매는 장면을 서술한 대목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깊은 고통의 실체가 그것을 닮았다. 경험한 광경에 관한 리얼한 묘사로서의 그것, 피부에 체득돼 마주하는 고통이다. 꿈을 꾸는 것인지 실재하는지 알 수 없는 환상을 동반하는 리얼리즘, 죽음의 경계에서 죽은 자를 호명하고 산 자와 만나는 초월의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강하는 오랜 시간 동안 그런 풍경화를 그렸다. 풀뿌리 돌멩이 하나까지도 꿈에서 마주할 것같이 생생하면서도 생경한 흙냄새 나는 풍경은 이승의 것인지 저승의 것인지 알 수 없이 꽤 오랜 시간 그려졌다.


작년 국립현대미술관 보존수복사업 결과전시회 <이강하의 응시>展이 있고 난 이듬해, 이강하미술관의 소장품 <아! 광주>展에서는 반외세 반봉건을 표방했던 동학운동 100주년 기념 작품 <아! 1894년>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유화로 꼼꼼하고 정교하게 그렸던 이전의 그림과 달리 종이 위에 가벼운 색을 칠해서 그렸다. 가로 219cm, 세로 53cm의 긴 종이에 그려진 그림의 배경에는 보라색 하늘의 무등산이 누워있다. 세상의 그 어떤 민중항쟁도가 이처럼 즐겁고 흥겨울 수 있을까? 화면 양쪽으로 북과 장구를 치는 사람이 장단을 맞추고 소복을 입은 여인은 치맛자락을 잡고 살포시 어깨춤을 춘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이 죽은 자들이라면 화면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무등산을 타고 오르는 신선이거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초월적 존재들이다. 부조리하고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을 떠나 낙원으로 가는 망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무속에서의 춤은 악귀를 쫓고 신령한 것과 접하여 살아 있는 자들의 안녕을 빌어준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세상의 고통은 여기서 사라지고 힘을 잃는다. 화면의 중앙에는 헬기를 동원해 총을 들고 시내로 진입하는 공수부대원들이 보이고 시민군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죽음을 불사하고 있다. 검은 새들은 투쟁 과정에서 희생된 시민들의 수만큼 빼곡하게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 그림에는 국가에 의해서 저질러진 폭력을 치유하고 넘어서는 힘이 있다. 무등산은 이 그림에서 주요한 장소적 배경이자, 이 모든 사건의 ‘혜원(解寃)’이 펼쳐지는 현장이다. 가파른 능선이 없는 산은 어머니의 너른 품처럼 포근하다. 이강하는 이 그림 이외에도 수많은 무등산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있어서 무등산은 광주의 역사를 담은 상징이자, 꿈에 그린 낙원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가 과거를 돕고,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날 수 있는.







■ 도슨트 안내 → 예매하기









Quick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