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이강하미술관 소장작품 전시 ‘아! 광주’
광주 이야기·무등산 연작 등 18점 전시
‘자화상’ 흉상·‘나는~’ 도자 첫 공개
도슨트프로그램 운영…4월 30일까지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한강 작가는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작업을 하던 시기에 떠올렸던 두 개의 질문도 꺼냈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였다. 현재와 과거는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산 자와 죽은 자는 무엇을 서로 도모할 수 있을까. 1980년 5·18 당시 시민군이었고 ‘무등산 화가’로 알려진 고 이강하 작가는 작가 노트에서 과거의 지나온 행적을 직시한다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정확한 지표를 설정할 수 있는 삶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게 있어서 과거는 한강 작가의 질문처럼 현재를 도울 수 있는 지표였다.

이강하미술관 소장작품 전시는 한강 작가가 던졌던 질문을 바탕으로 이강하 작가가 그린 광주항쟁 대표작 ‘아! 광주’를 통해 과거의 목소리를 불러오기 위한 대화를 시도했다.

이강하미술관에 들어서면 ‘자화상’(흉상)을 가장 먼저 만난다. 안쪽에 걸린 그림 ‘자화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오랜 세월의 풍파 속에서 손상된 흔적이 역력한 이 작품은 198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미술관 내부에 있는 도자와 함께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번 소장품전은 이강하 작가의 시선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광주’ 이야기와 ‘무등산’ 연작으로 구성됐다. ‘자화상’을 거쳐 미술관 내부로 들어오면 작가의 딸을 모델로 했다고 알려진 ‘기다림’을 비롯해, ‘아침이슬’, ‘무제-2(자아)’를 만날 수 있다.

이어 한국적 샤머니즘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고찰했던 2000년대 무등산 작품이 펼쳐진다. 웅장한 무등산, 그리고 연꽃이 깔린 길과 여성의 누드는 초현실적인 느낌의 묘한 매력을 안긴다.

이번 전시의 주제이기도 한 ‘아! 광주’는 1995년 그려진 수채화 작품이다. 5·18로 희생당한 광주 시민들의 죽음이 하늘을 가득 메운 까마귀로 형상화됐다. 헬기도 떠 있고 총을 든 공수부대원도 보인다. 한가운데 시민군들은 결연하게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들의 혼을 달래는 진혼굿과 사물놀이, 강강술래 등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갤러리 한 가운데는 도자기와 함께 판화가 전시됐다. 창살 아래 갇힌 시민군을 그린 목판화는 원판과 함께 전시됐다. 시민군의 어두운 표정은 묵직하면서도 강한 울림을 전달한다.

이번 전시는 작품 옆에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 보여줌으로써 해당 작품에 대한 해석을 돕는다. 또 아카이브 자료로 이강하 작가의 무죄 판결문과 자필진술서도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미술관 한켠에서는 작가의 생전 인터뷰와 신용구 작가의 오마주 영상을 볼 수 있다.

이강하 작가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시민군 활동 이후, 지명수배자가 된 상태에서 전국으로 은둔생활을 했고 결국 구속돼 1년여간 수감생활을 했다. 그의 삶에서 가장 불운하고 불온했던 시기에 마주했던 광주와 무등산의 자연풍경, 한국전통 단청무늬, 남도 오방색은 작가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함과 동시에 또 다른 세계로 연결하는 새로운 비단길이자 사상적 통로가 됐다. 그는 그림으로 고통을 극복하려 했고 그렇기에 작품 속에는 더 이상 참혹한 아픔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염원이 가득하다.

전시는 4월30일까지 계속된다. 사전 신청시 도슨트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