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산과 양림산이 정면에 보이고 양림마을을 살짝 내려다보는 곳, 묵비공원. 광주의 3·1 만세운동 발상지를 기념하는 곳으로 태극기 변천사와 함께 민족 대표 33인의 묵비석이 놓여있다. 도로 쪽 벽에는 3월 10일 광주만세운동을 이끌었던 ‘혈녀’ 윤형숙 열사 등 대표 인물들을 소개한 그림들이 있다. 양림동을 대표하는 교회와 기독병원, 사직전망대, 이강하미술관, 정율성거리 등도 지척이다. “양림동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투어를 시작하는게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묵비공원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는 이정덕 ‘역사공감 3! 4! 5!’가이드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지난 26일 양림동 한바퀴 테마투어 다크투어리즘 ‘역사공감 3! 4! 5!’가 진행됐다. 광주 남구청과 이강하기념사업회가 여름휴가 시즌을 맞아 지역민과 다른 지역 관광객이 광주 남구 양림동 일대의 예술과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문화예술형 역사 투어다. 양림동의 주요 역사적 장소를 숫자 3, 4, 5로 연결해 누구나 쉽게 남구의 역사 현장을 둘러볼 수 있는데 △ 3! =3·1만세운동길과 이강하미술관을 중심으로 예술과 함께 시대의 아픔과 저항을 조명하는 예술투어 △ 4! =사직공원과 사직단 일대를 걸으며 광주의 뿌리와 자연, 근대 역사 유산을 되새기는 자연투어 △ 5!=오월어머니집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기억을 함께 나누는 역사투어로 구성됐다.
A코스(1시간)와 B코스(2시간)로 운영되는데 이날은 B코스가 진행됐다. 이강하미술관과 3·1만세운동길, 사직공원전망대와 사직단, 오월어머니집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올여름 가장 극심한 폭염이 예고된 날이라 참여자는 3명뿐이었지만 이정덕 가이드의 안내로 3·1만세운동길을 따라 당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강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오월특별전시‘미래의 숨결, 무등의 오로라’를 관람했다.
이강하미술관에서는 이선 학예실장이 도슨트로 나섰다. 이누이트 미술을 보여주는 카버바우 매뉴미·닝게오시악 애슈나·새마이유 아커석의 작품들, 그리고 무등과 오로라로 상징될 수 있는 이매리·정정주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며 ‘오로라가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광주의 무등산에 비춰지는 상상’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5·18을 직접 경험하고 작품 속에 그 기억을 녹여낸 이매리·정정주 작가의 작품은 5월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다음 장소는 조아라기념관. ‘광주의 어머니’ 조아라 선생을 기념하는 곳으로 1층은 조아라 선생에 대한 소개와 함께 선생의 유물과 훈장 등이 전시돼있다. 2층에서는 10분 가량의 조아라선생 일대기를 영상으로 시청할 수 있다. 누구나 아는 조아라 선생이지만 영상으로 다시보는 그의 일대기에서 다시 한번 숙연해지는 마음이 든다.
이어서 들른 곳은 사직공원전망대와 사직단이다. 사직공원은 1970~1980년대 광주시민의 휴식처였던 곳으로 옛 팔각정은 흔적만 남아있지만 전망대에 오르면 탁 트인 광주 시내권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래쪽에는 조선시대 제단인 사직단이 있다. 사직단은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며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사직제를 지내는 공간이다. 옛 조상들이 국태민안을 기원하던 곳으로 광주 목사가 매년 제사를 주관했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역사공감 3! 4! 5!’이정덕 가이드가 오월어머니집에 전시된 오월어머니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 코스는 오월어머니집이다. 5·18당시 갖은 고초 속에서도 헌신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오월 어머니들의 쉼터다. 2층에 전시된 오월 어머니들이 직접 그리고 만든 작품들이 눈에 띈다. 5·18 민주화운동에서 계엄군의 과격진압으로 사망한 5·18 최초 사망자 김경철님 어머니의 그림은 빨간 구두다. 청각 장애로 인해 계엄군에 구타 끝에 사망한 김경철님이 평소 어머니에게 만들어주고싶다 했던 신발을 어머니가 아들을 그리며 그렸다고 한다.
오월어머니이기도 한 이정덕 가이드는 “오월어머니들이 이제 나이가 드셔서 병원에 계시거나 평소에도 거동도 쉽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며 “현재 정부에서 마음을 써주고 있지만 당사자들에게 제대로된 사과를 받지 못하셔서 한이 많으시다. 진상규명을 위해 애써온 그 세월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역사공감 3! 4! 5!’는 오는 10월 31일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0시에 운영된다.
신청은 신청 링크(forms.gle/qHuguFUMkcywtexU7) 또는 전화(062-674-8515)로 가능하다. 해설은 한국어와 영어로 제공되며, 도보 여행 형태로 양림동의 풍경과 이야기들을 체험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