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
작년 11월 캐나다 북극(킨가이트, 누나부트 준주)에 다녀왔다. 2023년 열렸던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캐나다 파빌리온이 인연이 된 방문이었다. 당시 이강하미술관에서 열렸던 ‘신화, 현실이 되다’ 전시는 이누이트 민족 예술의 전통성과 고유성을 아시아와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때 전시된 이누이트 작가의 작품을 보며 그들이 어떤 환경과 삶을 부여받았을지 궁금해졌다. 캐나다 북극의 자연 환경과 인간, 동물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누이트 민족과 예술가들을 만나고 싶다는 꿈은 ‘202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예술공동기금사업’ 에 선정되면서 현실이 됐다. 파빌리온 전시로 인연을 맺었던 캐나다 대사관의 ‘한국-캐나다 상호문화교류의 해’ 지원 프로젝트에도 선정됐다.
우리의 여정은 멀었다. 광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인천공항→미국 로스앤젤레스→캐나다 토론토→오타와 그리고 최종 킨가이트까지 총 아홉 번 비행기를 갈아타며 목적지 북극에 도착했다. 바다로 둘러싸인 킨가이트의 자연 환경은 가혹하게 추웠다. 북극 눈바람은 모든 것을 온전하지 못한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집, 사람, 바다, 산, 무덤까지 본연의 모습과 색을 감추어버린다. 찬바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창문과 문을 단단하게 걸어 잠그고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틈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 틈을 비집고 산에 살던, 배고픔에 지친 북극곰이나 토끼가 내려와 창문을 내다보고 주파수 신호를 잃은 고래나 벨루가가 다가오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가 마주 한 모든 이야기들은 신화인지 구전인지 소설이었는지 모를 이누이트 예술가들의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없던 대화들이었다. 그들의 몸속에 흐르는 이누이트 선대들의 피와 눈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들은 한국에서 킨가이트까지 먼길을 떠나온 우리에게도 전해졌다. 서로의 이야기를 언어가 아닌 몸짓과 그림, 감각으로 들려주며 우리가 예술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서로의 연락처나 이메일, 집을 모르더라도 우리는 뜨겁게 연결되어 있었다.
마지막 날 킨가이트 시장님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빙하로 끓인 이누이트 전통 검은 차와 빵을 먹었다. 과거 이누이트 역사를 전해 들었을 때 창밖의 출렁이며 눈앞에 펼쳐진 바다와 설경을 잊을 수 없다. 킨가이트의 마지막 밤, 어둠에 잠긴 눈산과 눈바람소리, 그리고 우리를 환대해주었던 이누이트의 눈빛과 바다를 기억한다.
북극의 경험은 ‘북극의 신화, 소멸의 저항:한국-캐나다 북극 리서치 결과 전시회 ’(5월 19일까지)로 구현됐다. 캐나다 대사관의 지원을 받고 캐나다 웨스트 바핀 에스키모 쿠퍼레이티브 기관과 협력해 추진한 전시로 한국과 캐나다 양 국가 간의 국경을 허물고 새로운 예술의 시도와 접점을 만들어 가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북극으로 가는 여정에서 만났던 캐나다 여러 도시의 문화 공간 및 기획자, 예술가들과 서로의 문화, 예술세계에 대해서 공유하는 자리를 갖고 나아가 한국과 캐나다의 더 많은 국제 문화교류 방안에 대한 발전적인 전망을 살펴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북극 킨가이트의 이누이트 공동체와 한국 광주의 작가와 기획자가 예술을 통해 진정으로 하나가 됨으로써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성장했다. 이 공유된 경험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서로 다른 두 공동체가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강하미술관은 올해 역시 캐나다 대사관과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인연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누이트의 역사와 삶과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이번 전시 초대장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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