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전남일보]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51> 무의식의 순간, 잠의 미학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예술가들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품 속에 남아 있는 잠의 모습”

프랜시스 베이컨 1974년 작 잠자는 형상.
바쁜 현대인의 일상 속, 우리나라 국민 중 수면장애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며 지난해 처음 70만 명을 넘었다는 기사를 봤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인원은 70만 9233명에 육박한다. 5년 전보다 43.3%나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수면은 우리 몸의 수많은 생체 리듬 중 하나이고, 좋은 수면은 삶의 질을 높여 준다. 각종 신체, 정신질환을 예방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하루의 끝에 우리는 작고 큰 스트레스와 고된 노동의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의 무의식 세계 너머로 떠나곤 한다. 방의 불을 끄고 따뜻한 이불로 온기를 느끼고 눈을 감은 채 편안하게 꿈나라로 가는 시간을 우리는 기대하는 것이다. 과연 고전의 명화 속 또는 다양한 현대예술가의 휴식 같은 예술 작품 속에서 과연 ‘잠의 형태’는 어떻게 남겨져 있을까? 살펴보고자 한다.

타마라 드 렘피카 1927년 작 잠.
급변하는 1930년대 뉴욕과 파리의 21세기 도시 여성들의 독립적이고 모던한 부분을 관능적으로 표현했던 부드러운 큐비즘(Soft Cubism)의 화가, 폴란드 태생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a, 1898~1980)는 잠을 자다 사망했다.
거리에서 화려한 고급 자동차를 몰거나, 누드로 잠을 자는 자유로운 여성의 모습을 자신만의 회화성으로 담아내며 몇몇 남성 중심적 관습과 전통을 주장했던 전문가들에게는 외면을 받기도 했지만, 초현실주의적 화풍으로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당시 작가는 아르데코의 거장으로 유명했다. 입체주의적 곡선과 직선, 그리고 투명한 색채감과 형태는 시각적으로 더 힘 있는 그녀만의 특징을 담아내기도 하였다.

앙리 루소 1897년 작 잠자는 집시 여인.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는 1844년 프랑스 북부 작은 마을에서 가난한 양철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학창시절에 특별한 재능이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으로 25년이란 긴 세월을 세관 하급직에 근속했다. 49세가 되던 해에는 그림만을 그리기 위해 직장을 자퇴(自退)했고, 소박하고 천진난만한 성품 때문에 매우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66세로 생을 마쳤다.
1897년 <잠자는 집시 여인(The Sleeping Gypsy)> 작품은 특히 그의 원시적이고 환상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부제: 아무리 사나운 육식동물이라도 지쳐 잠든 먹이를 덮치는 것은 망설인다.) 작가 루소는 이 그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길을 잃은 ‘니그로’라는 여인은 만돌린과 물 단지를 곁에 둔 채 오랜 여정 속에 지쳐서 잠들고 말았습니다. 그 곁을 사자가 간간이 지나치고 있으나 그녀를 잡아먹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제 생각에 건조된 사막에 비친 달빛이 아주 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보헤미안 여인은 동양식 의상을 입고 깊이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감돌고 있는 일종의 시적인 신비성은 색채와 달빛의 효과에 의한 것이 크다고 하겠으나, 그보다도 자연계에서 강대한 힘을 상징하는 사자와 이에 비하여 무력하고 무저항적인 한 여인과의 미묘한 대조적인 관계에서 작용되는 힘이 더 크다. 한편, 작품을 통해서 살펴야 할 일은 만돌린과 물 단지 등의 기하학적 형태는 이미 입체파 운동에서 10년이 앞서 있었다는 것이다. 몽상적(夢想的)인 세계를 표현한 초현실주의의 선구적인 면을 상기시켜 주었다. 이 부분에서 피카소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루소에게 찬사를 보냈다.

앙리 마티스 1940년 작 꿈.
마지막으로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1940년 작품 <꿈(The Dream)>은 탁자 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사랑스러운 여인을 담아냈다. 둥근 포즈의 모델은 (마티스가 특별히 주문한) 루마니아 풍의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그 사이로 강렬한 색과 거친 야수파 터치로 마티스가 추구해 왔던 장식성과 단순성을 조화롭게 표현했다. 색채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리듬을 가진 듯 화면을 구성하고 장식하고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하지만 마티스가 구현하고자 했던 색과 형상을 잘 담아낸 작품으로 많은 팬들에게 손꼽히는 인기 작품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예술가들은 타자의 시선과 현실의 감각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 본연의 무의식 세계 또는 꿈이나 환영을 통해 자신의 영혼으로 돌아가고자 기대했는지 모른다. 작품 속 작가들이 담아냈던 주인공들의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포즈와 표정을 바라보고 있으니, 하루 종일 바빴던 일상까지도 잠시 정적이 흐르고 조용해지는 기분이 든다. 이토록 ‘잠’은 예술가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품 속에 남아 있다. 부디 오늘 밤만큼은 독자 분들이 모든 일상의 긴장과 걱정을 풀고 휴식과 숙면을 취하시길 마음 속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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