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만·표인부·임남진이 기억하는 서정적 순간들
‘서정적 순간, 그 이후…’
개인적 경험 담은 작품 20점
31일까지 이강하미술관
5·18의 주제는 꼭 어둡고 무거워야 할까.
1980년 5월 시민들이 겪었던 부조리와 국가 폭력의 억압에서도 굳건하게 피워낸 공동체 정신의 밑거름을 먹고 자라온 작가들의 전시가 광주에서 열리고 있다.
이강하 미술관 기획전시 ‘서정적 순간, 그 이후…’이다. 전시에는 박수만·표인부·임남진 3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작가들은 1980년 광주를 함께 마주했고, 비슷한 시기 미술대학을 다니며 청년시절을 보냈고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전시는 우리 안에 있는 정서를 풀어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더 들어가 보면 각 주체가 겪은 개인적 사회적 경험을 담겼다. 작가 3인들은 전시에서 작품 20점을 통해 그동안 경험을 통해 떠올렸던 생각과 감정을 들려줬다.
18일 오전 이강하 미술관을 들어서자 전시장 입구에 놓인 나무패널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 패널에는 전시명인 ‘서정적 순간, 그 이후…’가 쓰여 있다.
참여작가들의 시대와 맞물리는 쎄시봉 시절의 영감을 받아 그 시절의 감성을 담아보고자 한 전시 기획자의 영감이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 두 점은 이번 전시의 맥을 짚어주는 듯했다. 대형 캔버스를 가득 채운 편지 봉투가 그려진 작품 ‘연서’와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컵이 꽃인 초를 그린 작품 ‘든자리 난자리’다. 모두 임남진 작가의 작품이다.
작품 ‘든자리 난자리’는 과거 “박근혜 탄핵”을 외치며 온 국민이 촛불을 들던 시기,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여흥식당 야외 테이블 위에 놓인 촛불을 임 작가가 보고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그날의 역사와 메시지를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작가만의 방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잃어버린 순수’를 작업 모티브로 하는 박수만 작가의 작품은 유쾌하면서도 의미 심장한 메시지가 담겼다. 엇갈린채 포갠 발을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박 작가의 작품 ‘내면’이다. 박 작가는 발가락을 하나의 인격체로 봤다.
작품 속 발가락을 유심히 바라보면 표정이 보인다. 모두가 유사한 표정을 짓는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른 감정이 느껴진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듯한 표정과 무표정한 표정 심드렁한 표정까지 다양하다.
박 작가는 누군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로 상처를 받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주목했다. 질환으로 아프기보다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인 고통을 받는 현대인의 고충을 담아낸 것이다.
표인부 작가는 한지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한지를 물감으로 염색해 겹겹이 붙이고 쌓는 과정은 하나의 수행이다. 물결을 그리며 퍼저나 가는 작품은 천으로 쌓아올린 작품 같기도하다.
작품의 색은 형광 빛을 띠는 노란색. 예쁘고 아름답게 느껴진 작품은 야속하게도 세월호를 집어삼킨 바다의 형상을 한 작품 ‘바람의 기억 -416’이다.
표 작가는 그간 세월호를 이야기하지 못했다. 최근 10 주기를 맞아 작업했다. 이와 비슷한 작업방식으로 만든 ‘바람의 기억-1026’은 이태원 참사로 숨진 청년들의 넋을 기리고 잘못된 시스템으로 벌어진 사회적 고통에 주목한다.
임남진 작가는 신작을 포함한 ‘연서’ 시리즈를 선보였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편지봉두와 쪽지 그리고 쪽지의 일부분이 그려진 작품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과연 그 속에 든 내용은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임 작가에게 쪽지는 그동안 쌓아온 ‘삶’이다. 삶의 사연을 쪽지로 형상화한 ‘연서’ 시리즈는 작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편지 이면서도 또 보는 이들에게 삶의 모순적 가치와 나를 사로잡고 사연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보길 바라는 염원과도 같다.
전시를 기획한 이강하미술관 이선 학예실장은 “1980년 5월을 증언했었던 사람들보다 겪지 않은 세대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며 “어떤 방식으로 후대에게 5·18의 정신과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할지 생각했다. 한강의 소설처럼 5·18을 겪지 않았던 세대들이 갖는 시대를 기억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전시는 31일까지 열린다.
/ 이나라 기자
/ 기사URL : http://www.jndn.com/article.php?aid=1721288546390618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