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올해 파빌리온 31개로 확장
l 국가 뿐 아니라 도시, 기관 등 다양한 참여 주체
l 최초로 선보이는 광주관, ‘광주정신’ 고민 녹아있어
l 중국관, 아카데미즘 사실주의 집중
l 참여 주체 예산 따라 천차만별…열악한 전시 풍경도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은 지난 2018년 3개 기관 참여로 시작해 2023년에는 9개로 증가, 창설 3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31개로 확장됐다. 이번에는 22개의 국가관과 9개 기관 및 도시가 파빌리온에 참여한다. 참여 주체가 국가로 국한되지 않고 독립적인 기관, 기획자, 도시 등으로 구성됐다.
▲독일관의 나무 설치 작품들이 바람에 따라 흔들리듯 춤을 추고 있다.
국가관으로는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캐나다, 중국, 덴마크, 독일,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일본, 말레이시아, 미얀마, 네덜란드, 뉴질랜드, 페루, 필리핀, 폴란드, 카타르, 싱가포르, 스웨덴, 태국, 베트남 등 22개가 있으며, 기관 및 도시로는 스페인 예술, 아세안(한-아세안센터),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니온, CDA홀론, 한국국제교류재단-(재)광주비엔날레, 한국국제교류재단-영국문화원, 광주광역시 등이 있다.
31개 파빌리온의 전시 장소는 22개소이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을 비롯해서 하정웅미술관,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양림미술관, 이강하미술관 등 광주지역 미술관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5·18기념문화센터 등 광주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장소, 펭귄마을공예거리 22동과 같은 일상적 장소, 양림동 등지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무등(無等)’의 정신, 광주 파빌리온
특히 주목할만한 것은 ‘광주관’이다. 광주 비엔날레가 개최된 이래로 ‘광주관’이 마련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광주시립미술관 3, 4, 6관에서 광주의 지역성을 담은 특별전 《무등: 고요한 긴장》을 선보인다.
전시가 개막한 지난 7일,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안미희 전시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기자들에게 전시를 소개하는 자리가 따로 마련되지 않아 아쉬워하던 안 감독은 전시장을 둘러보던 기자에게 반갑게 말을 건넸다. 그 덕에 안 감독에게 직접 이번 전시 기획에 대한 이야기와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광주관 특별전 《무등: 고요한 긴장》 전시 전경. 화려한 미디어아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무엇에 중점을 두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안 감독은 “광주에 대한 이야기가 5.18민주화운동에만 한정시키는 것에서 벗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라며, “’광주’ 하면 무엇이 상징적으로 떠오를지, 이 지역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그러면서도 동시에 광주의 역사를 품고 있는 단어가 무엇일지 고민했다”라고 밝혔다.
그 고민 끝에 찾은 것은 ‘무등’이다. 광주를 대표하는 산 중 하나인 무등산은 다층적 의미를 품고 있다. '무등(無等, equity)'은 불교 용어로 평등이 크게 이루어져서 평등이란 말조차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안 감독은 “’무등’은 광주를 대표하는 지역적인 단어이자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담고 있는 단어다”라며, “’등급이 없음’을 뜻하는 무등은 곧 공정을 뜻한다. 차별과 불공정이 전세계적인 이슈인 요즘, 좁게는 광주에서부터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적이고 미래적인 고민을 녹여내야겠다고 생각했다. 5.18민주화운동이 생소한 비경험 세대들이 ‘광주정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도 고민하며 전시에 녹여냈다”라고 주제 선정의 의도를 밝혔다.
▲임채욱의 작품은 언뜻 보면 그림과 같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한지에 프린트 된 사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동시대 시각예술가, 문화기획자, 연구자, 미디어 등의 협력을 도모하고,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참여 작가는 김신윤주, 김웅현, 나현, 송필용, 안희정, 양지은, 오종태, 윤준영, 이강하, 이세현, 임수범, 장종완, 장한나, 정현준, 조정태, 최종운, 하승완, 함양아 등 총 18명이다.
회화, 사진, 영상, 설치 등 신작 포함 총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민중미술을 중심으로 광주의 지역성과 한국성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작품들이 주가 된다.
사진가 임채욱은 (2024)을 선보인다. 임채욱의 작품은 언뜻 보면 그림과 같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한지에 프린트 된 사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림은 폭넓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지만 그 대상을 오롯이 바라보기 힘들고, 사진은 있는 그대로 재현할 수 있지만 창의적 표현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두 가지의 장점만을 접목한 방법을 찾고자 노력해왔다. 마침내 인화에 적합한 한지를 개발한 후, 사진을 한지에 출력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 출품작은 동학농민혁명의 최후 항쟁지였던 대둔산 바위를 배경으로 했다. 쪽화면에 펼쳐진 빛 능선의 첩첩산중은 그곳에서 펼쳐진 비극적 역사의 흔적들과 대비된다.
▲정진용, 낫초-군자의 왕, 2024
정진용 작가의 <낫초-군자의 왕>은 칼날 사이에 핀 난초의 모습을 한 작품이다. 난초는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를, 낫은 거칠고 날카로운 민중의 삶을 상징한다. 둘의 대비는 전시가 계속되며 시들어가는 난초의 모습과, 꼿꼿이 서 있는 낫의 모습으로도 이어진다.
중국의 아카데미즘 사실주의 회화, 중국관
금봉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신항섭 평론가의 기획으로 열리는 중국관 파빌리온 전시 《회사후소(繪事後素)》는 중국의 아카데미즘 사실주의 회화에 초점을 맞췄다.
전시 제목인 ‘회사후소’는 『논어·팔일』에서 유래한 말로, ‘그림을 그리기 전에 바탕을 하얗게 칠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번 전시는 기존의 유명 작가들이 아닌 아카데미즘을 준수하며 중국적인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중국 회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고자 한다. 전시는 전통적인 사실주의에서 현대적 실천으로의 흐름을 제시하며 중국 현대 회화의 역동적인 진화를 탐구한다.
▲전시가 개막한 지난 7일, 중국관 전시를 기획한 신항섭 평론가(우)가 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다.
섹션 1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기반을 두면서도 사실주의 양식을 발전시켜온 회화 작가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중국의 장강(양쯔강)과 같은 역사적인 서사 속에서 대자연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민들의 삶에 대한 순수함과 열정을 반영하고자 했다.
섹션 2는 사실주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개혁개방 이후 변화와 계승, 그리고 급진과 점진의 대립이나 충둘에서 개별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는 창작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서구의 현대미술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면서, 순수 조형의 문제를 고민하게 되었고, 주관적인 시각과 감정을 그림 속에 담아내는 데 관 심을 가졌다.
섹션 3에서는 청년 작가들을 소개한다. 이 작가들은 중국에서 회화를 공부한 후, 국제 적인 경험을 통해 현대미학을 경험하며 자유롭고 활달한 조형감각을 발전시켰다. 이 들은 중국 사실주의 미학에 뿌리를 두면서도 현대미학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며 독자 적인 조형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각 섹션의 작품은 중국 미술의 변화와 발전을 보여주며, 사실주의에서부터 간결한 형태미, 주관적 해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적 접근을 탐구하며 전시를 통해 동안의 중국 미술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레진과 같이 투명하게 레이어된 작품. 재료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들여다보던 기자에게 관계자가 말해주길, 며칠 전 전시장을 방문했던 작가가 재료를 묻자 “비밀”이라고 답해왔다고 한다.
전시별로 관람 환경은 ‘천차만별’
이 외에도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맞아 주한이탈리아문화원의 이탈리아 파빌리온과 한국-스웨덴 수교 65주년을 기념하는 스웨덴 파빌리온, 한국-필리핀 수교 75주년을 맞이하여 필리핀 파빌리온을 선보이며, 이번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하나로 묶는 아세안 파빌리온, 한국국제교류재단-영국문화원 파빌리온 등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파빌리온’의 장점은 아무래도 미얀마, 아르헨티나, 페루, 카타르 등 평소에 접하기 어려웠던 국가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 파빌리온은 참여가 국가에 국한되지 않아 더욱 다양한 색깔의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지난 7일, 프레스 투어가 진행됐던 카타르관 전시장. 뒤편의 이슬람 전통 건축 문양을 이용한 가청장이 눈에 띈다.
단점도 있다. 전시 기획에 있어 대부분이 각 국가, 도시, 기관의 재량으로 운영되는 만큼, 기획 주체의 역할과 부담도 크다는 것이다.
일례로, 기획 주체의 예산 사정이 각 전시의 관람 환경이나 규모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해당 국가에서 지원하는 예산의 규모가 큰 경우, 참여 작가 수, 작품 등 전시의 규모도 커지고, 전시 공간, 조명, 시설 등 전시 환경 면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국가의 이름을 내걸었음에도 가까스로 구색만 갖추기도 한다.
카타르관의 경우, 큰 전시공간에 높다란 가벽을 세워 공간을 주제별로 잘 구획했으며, 각 작품 별로 세심하게 조정된 조명 등 몰입이 용이한 관람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복도에 설치된 전통적인 이슬람 건축 문양을 이용한 가천장은 공들인 주제전과 같은 인상을 줬다.
▲아프리카관 전시 전경
반면, 아프리카관의 경우, 액자도 없이 벽에 붙어있거나, 걸려있는 사진 프린트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기자가 이러한 관람 환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아프리카관 관계자는 “아무래도 물가 차이가 있다 보니, 현실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답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규모나 관람환경 면에서 전시 별 편차가 눈에 띄게 크다. 작은 공간에 빔 프로젝터로 재생되는 영상 작품 몇 점이 전부인, ‘볼 거리가 없는’ 전시들도 존재한다. 파빌리온 전시관들 사이의 거리가 꽤 되는 만큼, 이 경우 관객은 허탕을 친 것과 같은 허탈함을 느끼기도 한다. 각 지역, 국가를 대표하는 전시인 만큼 어느 정도 균일한 조건을 갖출 수 있도록 시스템이 마련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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