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서영실(35·여)작가는 아련하게 사라져가는 것들을 화폭 위에 담아오고 있다. 멸종위기 동물과 도시의 풍경들 등 언제 없어질 지 모르는 존재와 이미 사라져버린 흔적들은 그의 화폭 위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서 작가가 담아내는 흔적들은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지나간 날들을 반추하게 되는 우리의 초상이자 남겨진 것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순수한 의지이다.

한때 서 작가의 작업실이 있었던 광주 동구 계림동엔 현재 적적함이 가득하다. 시끌벅적, 정이 넘쳤던 동네의 모습은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차갑고 딱딱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동네의 경쾌한 온기를 대체했다. 서 작가는 근작에 상실감으로 가득 찬 계림동의 모습을 담았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 스페이스 악어’에서는 한때 공간을 공유했던 이들의 축적된 삶과 상실의 아픔을 그린 서영실 작가의 근작 15점이 전시되고 있다. 광주전남 출신의 청년작가의 작품이 사라져가는 광주의 동네를 통해 삶과 죽음의 순환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는 어떤 존재였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묵직한 의미를 담고있다는 점 외에 이번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따로있다.

광주 남구 이강하미술관이 광주·전남의 청년작가들을 타 지역에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위한 첫번째 시도라는 점이다. 여느 미술관들에서 진행되는 ‘문턱높은’ 작가 교류 프로그램이 아닌, ‘함께 할 용기’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본격적인 프로그램 시행에 앞서 실험 차원에서 진행된 이번 전시에 서영실 작가가 참여하게 된데는 이러한 취지가 반영됐다. 서 작가는 조선대 미대를 졸업하고 수년간 작업활동을 해왔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과 타협을 해야만 했다. 새로운 작업을 고민하던 중 이강하 미술관으로부터 ‘작가 교류 및 네트워크’ 프로그램 참여를 제안받았다.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사는 “지역작가를 중앙무대에 소개함으로써 작가들의 활동영역을 넓히는 일을 오래 전부터 계획해 왔었는데, 마침 서울, 스페이스 악어로부터 지역작가를 소개해 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게됐다”며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는 청년작가들에게 이러한 기회가 돌아가는게 맞다고 생각했고, 이 프로그램이 새로운 동기부여를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서영실 작가에게 참여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어떤 부분에 특별히 신경써야 하는지 이선 학예사와 서영실 작가는 직접 두발로 뛰어다니며 교류전 준비에 나섰다. 지원금이 전혀 없는 상태라 두 사람의 사재를 털었고, 최대한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전시공간 청소에서부터 페이트칠 등 전시에 필요한 모든 과정에 두사람이 직접 나섰다.

오는 25일까지 서울, 스페이스 악어(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258-11, 1층)에서 진행되는 서영실 작가의 네번째 개인전 ‘ground 0 : 제로지점’은 이렇게 마련됐다. 그가 선보이는 15점에는 사라져가는 계림8지구의 풍경이 담겨져 있지만, 이번 전시 주제가 ‘제로지점’인 것은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서 작가의 굳은 의지가 담긴 까닭이다.

서영실 작가는 “지금 용기를 내지 못하면 평생 못할 것 같았다”며 “이번 전시가 작업을 향한 내 의지에 새로운 동력이 되고있다”고 말했다.

서영실 작가의 '소소한 풍경-광주광역시 동구 계림 8지구' 편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