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20200611_한겨레_5월 광주, 무심해서 미안했다
작성일자 2020-06-13





[한겨레]

5월 광주, 무심해서 미안했다



[광주비엔날레재단 특별전 ‘민주주의의 봄’]
현대미술 국내외 작가들이 광주를 어떻게 표현했나
독일 기획자 바우어가 낯설게 이해하고 분석한 전시


 


강연균 작가가 1981년에 그린 수채화 대작 <하늘과 땅 사이 1>(동강대 박물관 소장). 광주항쟁에 대한 작가의 정서가 반영된 첫 연작 작품이다.

광주에서 자행된 군사정권의 참혹한 유혈 진압에 대한 공포감과 고통, 슬픔, 희생자들의 참상을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방불하게 하는 충격적인 구도로 형상화하고 있다.



‘왜 이렇게 오래도록 무심했을까.’



  올해 40주년을 맞은 ‘광주 5월 민주항쟁’과 관련해 미술 장르에서 단박에 떠오르는 대표작은 무엇일까 생각하면 이런 물음이 덧붙는다. 문학이나 음악에서 무수히 많은 오월 관련 작품을 화제로 올릴 수 있지만, 미술판에선 홍성담의 유명한 오월 판화 연작 정도만 꼽힐 정도로 드물다. 광주는 물론, 진보 성향 작가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오월 광주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왔는데도 말이다. 군사독재 정권이 물러가고 세상이 바뀌었지만, 제도권 미술계에서 오월의 미술을 집중적으로 재해석하고 상기하는 기획은 여전히 드물다는 지적이 나온다. “철저히 중앙 화단 위주로 돌아가는 국내 미술계의 고질적인 구도가 광주의 지역 현안으로 오월 미술을 축소시킨다”는 비판(김진하 큐레이터)도 있다.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2·3층에서 지난 3일부터 열리고 있는 광주비엔날레재단의 특별전 ‘민주주의 봄’은 이런 맥락에서 흥미로운 생각 거리를 안겨주는 작품 마당이다.




이번 특별전에 처음 소개된 조진호 작가의 1980년 작 목판화 <오월의 소리>.

광주항쟁이 진압된 직후인 1980년 6월에 만든 작품으로, 당대 현장성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적지 않은 수작이다.

마귀가 날아다니는 하늘 아래 각진 공간에 포박된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무섭고 답답한 군사독재의 압제와 고통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했다.



  오월 광주를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국내외 작가들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표현했는지를 2000년대 이후의 낯선 근작들과 1980년대의 현장성 가득한 광주 목판화, 사진 아카이브 등을 통해 여러 층위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비엔날레에서 활약한 독일 출신 기획자 우테 메타 바우어는 역대 광주비엔날레에서 광주의 비극을 소재로 다룬 국내외 현대 미술가들의 실험적 출품작을 중심으로 80년 광주를 낯설게 이해하고 분석한 전시를 내놓았다. 3층부터 보게 되는 전시장엔 홍성담·조진호 등 광주 지역의 판화가들이 1980~90년대까지 항쟁을 소재로 작업한 연작이 걸렸다. 12회에 걸친 역대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된 영상, 사진, 설치, 그리고 80년 항쟁 당시 사진과 기록, 영상 아카이브와 뒤얽힌 형태다.





80년 광주항쟁 당시 총을 들고 시민군으로 전투에 나섰던 고 이강하 작가가 남긴 목판화.

항쟁이 끝난 뒤 감옥에 끌려가 수형 생활을 했던 당시의 암울한 경험을 핍진하게 담아냈다.

김진하 큐레이터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하는 작품이다.


  눈이 먼저 가는 건 현대미술 작업이다. 항쟁의 현장을 후대 사람이 재현한 가상 사진을 담은 오형근의 작업과 멕시코 유령들이 한국의 오월 민주화운동에 감명을 받아 항쟁지를 답사하며 여정을 벌이는 내용을 담은 코페라티바 크라테르 인베르티도의 영상 <퍼머넌트 홀리데이>가 감흥을 자아낸다. 중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유령이 광주의 현장에서 술을 마시고 서로 스킨십을 하면서 중얼거리는 <퍼머넌트…>의 장면이 색다른 역사적 상상력을 일으킨다.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를 물고문했던 욕조의 가장자리에 백두산을 본뜬 형상을 놓고 천지를 재현한 설치작업 <천지>를 인쇄해 내건 이불 작가의 대형 사진 작업도 인상적이다.



이불 작가의 설치작품 <천지>의 대형 사진이 내걸린 3층 전시장.

1987년 1월 박종철 열사를 물고문했던 욕조의 가장자리에 백두산을 본뜬 형상을 놓고 천지를 재현한 설치작업을

거대 사진으로 인쇄해 내걸었다. 80년대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진통이 분단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 후대의 현대미술 작품을 배경으로 더욱 강렬하고 새롭게 존재감이 부각되는 건 1980년대 당시의 현장성 넘치는 작업들이다. 그런 면에서 가장 주목되는 출품작들이 울림과 메시지가 여느 작품보다도 큰 50여점의 광주 목판화 컬렉션이다. 서울의 제도권 미술관에 처음 소개되는 이 목판화 컬렉션은 홍성담, 조진호, 한희원, 이상호, 이강하 등 광주 작가들이 항쟁의 전말과 의미를 형상화한 80년대 수작들로, 김진하 큐레이터(나무아트 관장)가 특별전의 한 부분으로 선별해 꾸린 것이다. 2층 전시장 서두에 나오는 조진호 작가의 1980년작 목판화 <오월의 소리>를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광주 민주화 항쟁이 진압된 직후인 1980년 6월에 만든 작품으로 역사적 의미가 적지 않은 수작이다.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하늘 아래 각진 공간에 포박된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군사독재의 압제와 고통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했다. 80년 광주항쟁 당시 총을 들고 시민군으로 전투에 나섰던 고 이강하 작가가 남긴 목판화는 항쟁이 끝난 뒤 감옥에 끌려가 수형 생활을 했던 암울한 경험을 핍진하게 담아내며 보는 이들의 공감을 일으킨다.





3층 전시장 모습.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 출품됐던 박태규 작가의 가상영화 <광주탈출>의 포스터가 보인다.


  3층 뒤켠에서 만나는 강연균의 대작 수채화 <하늘과 땅 사이 1>도 놓칠 수 없는 수작이다. 광주항쟁에 대한 작가의 정서가 반영된 첫 연작 작품으로, 광주에서 자행된 군사정권의 유혈 진압에 대한 공포, 고통, 슬픔, 참상을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방불하게 하는 충격적인 구도로 형상화했다.


  작품들만이 주역은 아니다. 장갑차에 올라탄 시민군 전사의 모습을 포착한 이창성의 보도사진과 광주의 실상을 세계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의 취재 자료가 반영된 독일 텔레비전의 녹화 영상 등을 작품들 사이에 함께 곁들이면서 기획자는 기록과 창작을 통한 민주주의의 지속성과 자기 성찰을 전시의 행간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7월5일까지. 인사동 나무아트에도 5월 광주의 현장과 군사정권의 폭압상을 새겨 찍은 80~90년대 목판화 50여점이 별도로 출품돼 30일까지 선보이는 중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나무화랑 제공

<기사 URL :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948984.html#csidxb9715e5cdd2ac16812007a77d747a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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