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20201201_전남일보_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제13화 <자서전적 고백 예술>
작성일자 2020-12-02


[전남일보]

문화칼럼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제13화

<자서전적 고백 예술(Confessional art)>






<자서전적 고백 예술> Confessional Art



이 선 / 이강하미술관 학예연구사


 모든 인간은 상처를 가진 동물이다. 그 상처의 크기와 상태, 모양은 각기 다르며 그 나름의 치유와 승화 방식 또한 다르다. 우리의 상처가 타의적이든 자의적이든, 비슷한 시기 출생하여 숙명적 삶의 절규를 독창적 창작으로 승화한 열정의 예술가 두 명을 이번 열 세번째 칼럼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꿈 대신 현실을 그렸다."라고 한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와 "나의 예술은 Catharsis카타르시스(정화)다."는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이다





[사진 1. 프리다 칼로(Frida Kahlo) 생전 사진, 1947년]


[사진 2. 프리다칼로(Frida Kahlo), 상처 입은 사슴, 캔버스에 유채, 22.4x30cm, Collection of Mrs. Carolyn Farb, Houston, 1946년]


[사진 3. 줄리 테이머(Julie Taymor) 감독의 '영화 프리다(Frida)' 중, 2002년]

 프리다 칼로는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 18살 때는 교통사고로 9개월간 깁스를 하고 지냈다. 그녀는 자신의 교통사고를 "다친 게 아니라 부서졌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때 어머니가 병상에 이젤을 마련해 주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자화상을 주로 그린 그녀는 "나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에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에 나를 그린다." 라고 했다.

 그녀는 22세에 연상(21세)의 천재 화가 리베라와 결혼지만, 그는 바람둥이 었다. 프리다 칼로는 리베라의 바람을 참고 견뎌야 했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과 아이에 대한 갈증의 고난과 슬픔을 자신의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이후 남편과 한동안 별거를 했고, 헤어졌다 다시 결혼하였다. 그녀의 삶 속에서 결혼은 두 번째 대형교통사고이자 최대의 축복이라고 말할 정도로 애증과 미움이 공존했다. 1940년대 말,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척추 통증이 심해 여러 차례 수술을 하면서도 육체·정신적 고통을 작업으로 이겨냈다. 1953년에는 그동안 그린 그림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그녀는 마지막 (내 영혼의)일기에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이라는 말을 남기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프리다 칼로는 보기에 아름다운 그림이 아닌 자신의 고통스런 삶을 처절할수록 아름다운 고백 예술로 작업으로 기록해냈다. 경이로운 풍경이나 현실을 떠난 초현실적 이미지가 담긴 샤갈의 작품도 있지만, 자신의 삶을 진실 되게 있는 그대로를 고백하듯이 드러낸 작품 또한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의미들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다.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작업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오랜 시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사진 4.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99세 생전 사진, ⓒ알렉산더반겔더, 2009년]


 두 번째 소개할 작가는 전 생애(100세 가까운) 다양한 예술적 실험과 도전을 거듭했던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이다. 그녀는 프랑스 설치미술가이자 20세기 중요한 미술가 중 한 명으로 조각 분야의 개척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초현실주의자들의 관심인 무의식 세계와 자신의 아버지로 인해 불행했던 가정환경이 주로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작 으로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을 때 "마망(Maman)의 거미는 나의 어머니께 바치는 송시다." 라고 소감을 밝혔다. 어린 시절 부르주아에게 어머니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어머니는 거미처럼, 베틀에서 베를 짜는 사람이었다.(당시 그녀의 가족들은 벽걸이 카펫을 수선하는 타피스트리(Tapestry) 직조사업을 했고, 어머니는 생산을 담당했다.) 어머니는 자신을 희생하며 거미처럼 살다 병으로 삶을 마감했고, 알콜 중독이자 폭군의 아버지 밑에서 모든 것을 보고 느끼며 자란 부르주아는 자신의 모든 작품을 유년에 받은 상처들을 치유하는 메타포로 가득 채워나갔다.



[사진 5.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Maman,Tate Modern London,1999년]


[사진 6.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Maman 작품과 함께]


"예술은 정신의 건강함을 보증해준다. 이것이 바로 내 작업의 가장 중요한 얘기다.

나의 예술은 Catharsis카타르시스(정화)이고, 내가 경험한 상처, 증오, 연민을 표현했다."



 이렇게 루이스 부르주아의 아픔을 담은, 엄마거미 마망 작품은 전 세계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고난의 삶과 트라우마를 자신 만의 작업방식으로 치유했던 두명의 예술가, 프리다 칼로와 루이스 부르주아처럼 이상적인 예술(Art)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꿈꾸는 기능을 하고 있다. 다만 우리 모두가 어떤 수단을 빌려 예술가처럼 치유하는 방식을 찾지 못했을 뿐일 것이다. 결국 이들의 예술은 자서전적 고백 예술(Confessional art)의 의미였고 시초가 되었다. 연인과 가족에 대한 사랑에 대한 연민과 배신감의 증오는 그녀들의 삶 전체에서 사회적 위치에서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파괴하는 작품세계로 구현되었다. 그리고 묻는다.

"예술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누가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가"


 많은 사람들은 모두 크고 작게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시대의 예술가들은 평생에 걸쳐 사회 속 편견과 차별, 폭력에 맞서야 했다. 근거 없는 슬픔과 혹평, 말 못할 소문 그리고 뜨거운 찬사에 오랫동안 외롭게 싸워야만 했고 싸우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난간을 도망치지 않고 맞서 부딪히며 승패와 상관없이 마침내 자신 만의 방식과 예술적 언어로 구현해냈다. 태어난 곳, 내면의 상처가 다르지만 두 예술가는 서로 닮은 부분이 있다. 결국 과거의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용감하게 지켜냈던 삶과 작품은 21세기 코로나19와 동행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술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 URL : https://jnilbo.com/view/media/view?code=202011301712156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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