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그려진 그림展
내 작업은 골판지를 자르고 이어 붙여 채색을 하는 '종이부조 회화' 이다.
작품에 담긴 내용과 의미를 배제하고 형식만 놓고 보자면 '그리는' 그림이아닌 '만드는' 그림이라고 정의 할 수 있겠다.
공정이 다양하고 손이 많이 가는 노동집약 형태의 작업이다 보니 의도치 않게(?)_ 혹은 예상했던 대로_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보다 이미지를 이루고 있는 뼈와 살_회화의 물성(物性)과 질감이 종종 더 부각되고 강조되기도 한다.
전통적인 미의식을 옹호하고 대중의 감각적 기호에 호소하는 측면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회화가 지닌 평명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물성 자체로 인식될 수 있는 그 무엇을 만들고자 고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_혹은 그것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곁가지 실험으로, 기존의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 그간 작업의 소재로 사용했던 대상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들을 재 구성한 전시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어떤 사물과 현상을 똑같이 바라볼 때 서로 같은 언어체계 안에서 그것을 사고하고 판단한다고 생각하지만 엄밀히 따졌을 때 사람들의 언어체계가 일치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한 장소에서 100명의 관람객의 똑같은 풍경화를 바라보고 있다 해도 그 그림에 대한 느낌과 기억이 천차만별인 것은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인식과 판단의 틀이 다르고 그것을 정의하는 언어체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믿음이 사라지면 우리는 우리 머릿속에 존재하는 그 대상이 참인지 거짓인지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 아름다운 추함 같은 상대적인 가치체계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전시를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차이,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의 구분,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는 것들의 간극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